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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19 April 2010

믿을 수 없는 제 체험 생활



필리핀에서 형제자매가 8명이 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1학년인지 2학년에 (2001-2002) 저의 부모님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따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형제자매들과 많이 힘들었습다.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만나서 현재까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결혼하게 되면 이 같은 상황이 나한테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 당시도 제 형제들 중에 대학까지 나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살기가 어려워서 부모님이 우리를 동시에 학교 보내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대학 까지 끝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제 형제들은 나를 도와준다고 해서 저도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2006년 04월에 대학 졸업을 하였습니다. 졸업하자마자 필리핀 도시의 마닐라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습니다만 저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단, LICENSURE TEACHER TEST를 준비하겠다고 생각해서 교사면허를 따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2006년 08월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시험 본 후에, 다시 마닐라에 가서 구직을 해야 할 상황이라 마닐라에서 지내고 있을 때, 필리핀 남성 중개인이 저에게 연락 하여 한국인을 소개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별 기대 없이 가봤습니다. 그때가 2006년 08월 10일이었는데 남편과 만나게 되었는데 저를 보기 전에 이미 8명의 여성을 보았다며 제가 9번째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인 중개인이 저에게 “Mr. Kim이 어때?” 라며 내가 좋아하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만약 Mr. Kim이 날 괜찮다면 좋다고 하자 Mr.Kim도 좋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어로 한국인 중개인과 제 남편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몰랐는데 한국 중개인의 필리핀 여자 비서한테 저의 부모를 다음 날에 오라고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결정한 것에 갑자기 고민이 생겼지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허락을 받고 다음 날에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고 몰래 결혼을 했습니다. ㅎㅎㅎ)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후 제 고향으로 가서 3일 동안 함께 지냈고 남편은 다시 한국에 돌아갔습니다. 그때 바로 임신이 되었습니다. 중개인이 저에게 서류를 준비 하고 문제가 없으면 한 달 후에 바로 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4-5개월 기다렸습니다. 한국에 갈 기다리는 동안 제 배가 점점 부르면서 남편한테 받은 연락 한 통도 없습니다. 중개인의 필리핀 여자 비서에게 자꾸 연락을 해서 남편이 저를 언제 데리러 오냐고, 왜 연락도 없냐고 등 물었습니다. 필리핀 비서는 저에게 기다리라고 만 말하였습니다. 저는,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 당했고 마음이 많이 아팠고 고민 고민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에 필리핀 비서가 갑자기 저에게 문자로 와서 아이는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매일 울었습니다. 그때 제 평생에 흘릴 눈물을 다 흘린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유산하고 싶은 생각까지 하였지만 제 어머니와 형제들이 “괜찮다 ”, “걱정 하지 말라 ” 고 아이를 함께 키워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2006년 10월에 교사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합격 이었습니다. 시험 합격 후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제 아이를 혼자힘으로도 키울 수 있는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 중개인이 많이 아파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개인이 아파서 제 입국수속이 늦어졌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2006년 12월 3주에 사업을 이어받은 중개인의 큰 아들이 저를 데리러 와서 2006년 12월 23일에야 드디어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건지, 어떻게 낯선 땅에서 적응 할 수 있는지, 한국 문화를 하나도 모르고, 한국어도 전혀 몰랐다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염려대로 시댁과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한국음식 먹는 것 도 먹기 어렵고, 하루에도 수십번 친정이 생각나 날마다 날마다 울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물론 남편과도 의사소통 잘 안 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못해 계속 울고만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시어머니와 남편도 같은 입장이 었던것 같습니다. 제일 힘든 것 은 시어머니와 말이 통하지 않고 시어머니는 나에게 답답해 하는 모습이 보이자 “이래서 안 돼겠구나 ,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에는 어머님도 시간여유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시고 저녁이면 남편이 퇴근하여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의 한국어 실력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노력으로 날마다 발전하였습니다.
2008년 03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방문지도사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때 한국어를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제 한국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고 저보다 더 오래된 사람보다도 낫다는 말을 듣게 되자 공부가 더욱 재미있었고 더 열심히 하게 되자 한국어 선생님께서 더욱 사랑해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11월에 이주여성긴급지원 센터 1577-1366에서 자국어 상담원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의 한글 선생님이 저에게 이력서를 내보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에 온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저는 벌써 2명의 아이를 둔 아이엄마였습니다. 그 당시 2살 된 딸아이와 돌이 안 된 아들이 너무 어려 직장생활은 안된다며 남편과 시어머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녀양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와 같은 처지의 여성을 돕는다는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을 것 같지 않아 남편과 어머님을 설득하였습니다. 제가 간곡하게 부탁하고 설명하자 드디어 어머님과 남편이 면접 보는 것을 허락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합격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열심히 부탁하는 모습에 계속 반대하면 원망할 까봐 허락하였던 것이라고 나중에야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면접볼 때 꼭 합격하겠다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 저의 열정이 통했는지 놀랍게도 합격하였습니다.
2008년 12월, 드디어 한국땅에서 나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주여성긴급지원대전센터1577-1366에 필리핀/영어 상담원으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일하면서 저와 같은 이주여성들에게 전화 상담이나 면접 또한 방문 상담 할 시, 특히 그녀들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녀들에게 상담 해줄 때, 저의 한국 적응 생활을 많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참고 기다리며 노력하는 자세와 남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시부모/시댁과 관계도 어떻게 개발할 건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지 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담자들에게도 건강한 가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상담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상담 할 때,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 하게 될 때 저는 남들에게 도움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성공과 보람이 나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올해 03월 첫 주에 국적취득 허가를 받았습니다. 절차에 따라서 04월 16일에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고 한국 이름(최혜란)으로 변경 할 예정입니다. 참 멋진일이지요
저는 필리핀인 크리스틴시 모수엘라이며 한국인 최 혜란이기도 합니다. 글로벌한 시대에 저는 2국의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 한국이름 최씨 성은 시어머님의 성을 따른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김씨인 아버님과 잘 지내셨기 때문에 저에게도 남편과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라고 어머님성을 주신 것입니다. 막연한 동경으로만 얼떨결에 본국을 떠나온 나는 두려움과 외로움과 현실의 어려움으로 눈물과 한숨이 있었지만 제 스스로 잘 이겨냈고 또한 이겨낼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주고 도와준 한국의 가족들이 있기에 오늘의 행복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 위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힘들다 해도, 쉽지 않다고 해도 꿋꿋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과 잘 살고 있는 것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답니다.






2010.04.19
크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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